작성일 : 14-12-11 23:43
#5. 번역은 작문 또는 독해가 아니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97  
[번역이란 무엇인가] 번역은 작문 또는 독해가 아니다.

He is too young to go to school.
그는 너무 어려 학교에 갈 수 없다.
1) 그 아이는 학교 가기는 아직 일러.
2) 톰은 아직 학교 갈 나이는 아니야.
3) 우리 아들은 나이에 비해 아직 학교 갈 만큼 성숙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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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제2외국어로 학습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번쯤 만나 보았을 아래의 영어문장을 생각해 보자.

He is too young to go to school.

위의 지문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영어의 too/to 용법을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영어의 too/to 용법은 일반적으로 '너무 ~하여 ~할 수 없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배운다. 따라서 위의 문제의 정답이 아래와 같음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는 너무 어려 학교에 갈 수 없다.

언어학습의 과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이러한 작업에서는 번역이 '언어학습의 도구'로 활용된다. 이는 학습번역 혹은 교육적 번역(pedagogic translation)이라 부르는 것으로, 번역 대신 '작문·독해'라는 말과 혼용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한국어에서 외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작문'이라 하며, 외국어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독해'라 한다. '영작문 수업'이라고 하면 한국어로 된 간단한 문장이나 텍스트를 영어로 옮기는 것을 칭하며 '스페인어 독해'라고 하면 스페인어로 된 텍스트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칭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은 늘 지켜지는 것은 아니어서, 종종 이러한 작업 역시 '번역'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작문·독해는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의미의 '번역'과 여러 가지 차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번역과 작문·독해는 작업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 작문・독해의 경우 일반적으로 언어학습자의 언어능력을 제고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위의 지문을 예로 들자면, 정답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해당 언어학습자가 영어의 too/to 구문을 잘 이해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반면 번역의 경우, 그 목적은 서로 다른 언어 간의 소통에 있다. 따라서 해당 문장의 이해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관건이다.

둘째, 번역과 작문·독해를 구분 짓는 또 하나의 차이점은 바로 대상독자(adressee)가 다르다는 데에 있다. 위의 지문을 다시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면, 작문·독해의 경우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대부분의 경우 해당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이 언어능력의 평가를 목적으로 결과물을 읽게 된다. 반면, 번역의 경우 대부분 원문을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이다. 물론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서적을 원문과 대조해가며 읽는 독자들도 간혹 있으나 이는 매우 드문 경우이며, 대부분의 번역물은 원문의 언어(SL)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번역된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이고 완결성 있는 텍스트여야 한다.

다시 말해, 원문의 도움 없이 번역텍스트가 홀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사실 같지만 이는 번역초보자들에 의해 상당히 빈번하게 간과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로 쓰인 에스프레소(espresso) 머신의 사용설명서를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하자. 해당 사용설명서를 읽게 될 한국의 소비자들은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 사용설명서를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서는 프랑스어 사용설명서 원문을 참고해 가며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어로 번역된 사용설명서는 한국의 소비자들이 그 설명서만 읽고도 문제없이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작문·독해와 번역은 맥락이 주어지는가 여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영어 문장 'He is too young to go to school.'을 전문번역사가 번역하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번역사는 위의 지문을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1) 그 아이는 학교 가기는 아직 일러.
2) 톰은 아직 학교 갈 나이는 아니야.
3) 우리 아들은 나이에 비해 아직 학교 갈 만큼 성숙하지 못해.

독자가 이미 간파한 것처럼 영어 원문의 'he'는 '그 아이' '톰' '우리 아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번역되었으며, 영어의 too, to 역시 '~하기는 이르다' '아직 ~할 나이는 아니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옮겨졌다. 번역사는 이렇게 다양한 번역문 중 어느 하나를 최종적인 번역문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맥락(context)이다. 위의 영어 문장은 어쩌면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빨리 학교에 보내자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하며 하는 말일 수도 있고, '톰'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카를 둔 삼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들은 대체로 해당 문장이 담겨진 텍스트 내에서 주어질 수도 있으며 텍스트 외적 상황을 통하여 제공되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맥락'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앞뒤 문장과의 논리적 연결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사가 알고 있는 사전지식, 정황에 대한 정보 등을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번역사는 이렇듯 주어진 맥락에 따라 최종적인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맥락 없이 주어지는 텍스트를 옮기는 작문·독해 작업과 번역을 구분 짓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번역은 맥락과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번역자는 항상 주어진 텍스트를 상황 속에 위치시키고 그 속에서 적절한 번역을 찾아내어야 한다. 철학자 리쾨르(Ricoeur)가 말한 것처럼 번역은 단어에서 문장, 맥락, 문화,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문화, 맥락, 문장으로 좁혀가는 작업인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친구들과 함께 중국집에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친구들 중의 한 명이 '나는 자장면'이라고 말했다.

만일 '나는 자장면'이라는 말을 다른 언어로 통역하거나 번역해야 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까? 맥락을 배제하고 전적으로 언어적인 차원에서만 보자면, 위의 발화는 극도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장면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자장면이다.
나는 자장면을 주문하겠다.

그러나 위의 발화가 친구 여럿이 중국집에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간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위의 문장을 영어로 'I am 자장면'이라고 옮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번역에서 '화용적인' 맥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번역자가 '이러한 방식이 아닌 저러한 방식으로 번역하기로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 바로 맥락이다. 이것이 바로 외국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세 사람이 나누어서 급히 번역할 경우, 앞을 읽지 않고 중간부터 번역한 번역자의 결과물이 결코 좋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번역과 작문·독해는 목적의 차이, 대상독자의 차이, 맥락의 유무 등 세 가지 요소를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번역은 작문·독해가 아니다 (번역이란 무엇인가, ㈜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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